억압과 억제
억압(抑壓, 영어: Repression, 독일어: Verdrängung)은 자아를 위협하는 소망이나 충동을 의식으로부터 무의식에 두는 것
(그 목적을 달성 가능한 상황이 될 때까지 일시적으로만 잊는 것)이며, 따라서 의식되지 않은 채 그것들을 보관 유지한 상태이다.
정신분석에서는 상정되는 자아의 방어기제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석심리학에서는 억눌린 소망과 행동을 그림자라는 원형에 포함시킨다.
억제(抑制, 영어: Suppression, 독일어: Unterdrückung)는 억압과 달리 당사자 스스로 행위를 안 하겠다고 결심하여 목적의 달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욕구나 소망이 공감을 얻지 못한 채, 억제되면 억제될수록 사람이 폭주하게 된다는 것이 그 견해로서 있다.
억압은 무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자기도 모르게 사용하지만, 억제는 의식적으로 어떤 노력에 의한 선택이다.
억압은 신경증적 방어에 속하고, 억제는 성숙한 방어에 속한다.
방어기전은 크게 자기애적 방어, 미성숙방어, 신경증적방어, 성숙한 방어로 나뉜다.
성숙한 방어 외에는 모두 정신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는 방어기전이라는 것을 보아 방패가 되어줄 방어기전을 선택하는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상황이 어떠한지 또한 어떤 느낌의 감정이 드는지 마주하고 인지하고,
어떤것들을 감내해야 하는지,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무엇인지 알고 선택하는 것이 자기자신을 지킬수 있는 성숙한 방법이다.
어떤 이유나 원하는 결과가 있다면, 나쁘거나 불쾌한 감정도 의식적으로 참고 감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것이 중요하다.
억제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좌절 상황에서도 특별한 묘안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억제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게 될수록 자신의 문제를 기가 막히게 해결해 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찾아다니는 경향이 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평범한 일을 꾸준히 그리고 포기하지 말고 정진해 나가는게 중요하다.
슬픔, 외로움, 분호, 고독, 우울함 같은 것들도 나의 감정 중 일부이니,
자신의 마음임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표현할것인지 참을것인지 스스로 결정하여 선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개요
프로이트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자아방어라고 생각하며 차단되고 원초적 자아(id)로부터 일어나는 충동을 거부했을 경우, 그 충동은 의식으로부터 무의식에 쫓아 버려진다.
그러한 활동을 억압이라고 말한다.
정신분석학에서 억압은 인격 발달을 위해서 필요한 개념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예를 들면 아기의 무렵의 기억이 없는 것은, 전형적인 억압에 의한 것이라고 말해지고 있어 왜 유아기의 기억이 잊는가 하면,
그것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의해서 부모님에게 많은 소망이나 충동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 생각은 과학적으로는 증명되어 있지 않지만, 사실, 조현병의 환자 등은 유아기의 기억의 억압이 확실히 되지 않고, 환각이나 환청으로서 이것을 생각해 내거나 한다고 한다.
또 예술 활동의 환상적인 작품을 만드는 모티프의 원천은, 이 억압되어 있지 않은 소망이나 충동이나 기억을 유효하게 활용한다고 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의해 소망이나 충동이 억압되어 즉 무의식 중에 밀어넣어져 금지된 욕망으로부터 자아와 초자아가 분화한다.
이 때, 소망이나 충동을 무의식 중에 억압하기 때문에, 의식과 무의식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해진다.
자아(ego)와 에스(원초적 자아 id)가 분화되어 있지 않은 아이나 조현병 환자나 신경증 환자를 관찰하는 것에 의해서, 프로이트는 억압을 인격 형성의 중요한 계기라고 생각했다.
억압된 충동은 무의식으로부터 의식에 몇 번이나 부상하려고 시도하지만, 그 시도는 자주 유해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억압은 부모나 외적인 일에 부정된 소망이나 충동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무의식 중에 억압된 충동은, 그대로 무의식 중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우회로를 다니며 외부로 방출된다. 완전하게 억압되면, 그 충동은 자아에 의해서 변형되거나 승화되어 유효하게 활용되지만, 헛기침이나 실언 등의 말에 결합되어 표현되기도 한다.
또 다리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등의 기질, 성병리나 불안신경증 등의 어떠한 증상에 의해서 의식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소망이나 충동을 억압한 본인은, 소망이나 충동을 억압하고 있는 것 자체를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억압된 소망이나 충동은, 본인의 육체나 사고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의식하러 나오거나 그 본인을 움직이려고 한다.
다만 완전하게 무의식 중에 머무는 경우도 더러 있다.
주기
억압 개념은 프로이트 이후의 정신분석가에 의해서 여러 가지로 말해지고 있으므로, 현재는 같은 용도로 사용된다고는 반드시 한정되지 않는다.
억압이 빈번히 일어나는 시기나 그것이 어떻게 행해지는지는 논자에 따라서 다르다.
외상성 사건의 기억에 관해서 '억압된 기억'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 개념은 충동은 아니고 기억에 중점을 두고 있으므로 억압과는 엄밀하게는 다르지만, 자주 혼동해서 사용된다.
이 논란 '억압된 기억'의 존재 가능성을 둘러싸고, 1990년대 무렵에 격렬한 토론를 했다고 여겨지지만, '억압된 기억'은 있다.
문제는 '억압된 기억이 소생했다'는 그 내용을 항상 사실로써 믿어야 하는 것인가라는 점을 둘러싼 논쟁이며,
사람의 기억은 비디오와 같이 기억되는 것이 아니고, 생각해 내는 그 때에 구성되는 것이라는 것이 현재의 뇌과학, 및 인지심리학으로의 도달점이다.